kWh와 kW, 양과 속도

배터리 얘기에서 제일 먼저 헷갈리는 두 단위입니다. 물에 빗대면 금방 갈립니다.

  • kWh(킬로와트시)는 물의 총량입니다. 얼마나 담았는지, 얼마나 썼는지를 나타내는 양의 단위입니다. 배터리 용량이 60kWh라면 가득 채웠을 때 약 60kWh의 전기를 담습니다. 집 전기요금 고지서에 찍히는 사용량도 같은 단위입니다.
  • kW(킬로와트)는 수도꼭지의 굵기입니다. 전기가 얼마나 빨리 흐르는지를 나타내는 속도의 단위로, 충전기 출력이 100kW라면 이론상 1시간에 100kWh를 넣을 수 있는 속도라는 뜻입니다.

둘 사이에는 kWh = kW × 시간이라는 관계가 있습니다. 7kW 완속충전기로 3시간 충전하면 약 21kWh가 들어갑니다. 충전 비용을 따질 땐 kWh를, 충전 시간을 따질 땐 kW를 씁니다. 이것만 구분해 두면 나머지 숫자는 대부분 자연스럽게 따라옵니다.

충전기 출력(kW)이 높다고 요금이 비싸지지는 않습니다. 요금은 실제로 들어간 전력량(kWh)에 단가를 곱해 정해집니다. 급속이 비싼 건 출력 탓이 아니라 단가 자체가 높게 책정돼 있어서입니다.

총 용량과 가용 용량

카탈로그에 배터리 용량이 두 가지로 적히는 경우가 있습니다. 총 용량(gross)은 배터리 팩이 물리적으로 담을 수 있는 전체 양이고, 가용 용량(net, 사용 가능 용량)은 실제 주행에 쓸 수 있는 양입니다.

둘이 다른 건 제조사가 수명을 위해 위아래로 여유(버퍼)를 남겨 두기 때문입니다. 계기판이 100%를 가리켜도 물리적으로 꽉 찬 상태가 아니고, 0%를 가리켜도 완전 방전은 아닙니다. 이 버퍼 덕분에 배터리가 극단적인 충·방전 스트레스를 피합니다.

주행거리를 계산할 땐 가용 용량을 기준으로 해야 실제와 가깝습니다. 총 용량으로 계산하면 낙관적인 값이 나옵니다. 카탈로그에 숫자가 하나만 적혀 있다면 총 용량인 경우가 많으니 조금 빼고 보는 게 안전합니다.

SOC: 지금 얼마나 남았나

SOC(State of Charge)는 현재 충전 상태를 0~100%로 나타낸 값입니다. 스마트폰 배터리 % 표시와 같은 개념이고, 계기판에 뜨는 잔량이 바로 이것입니다.

SOC를 전력량으로 바꾸려면 용량을 곱합니다. 60kWh 배터리에 SOC 50%면 약 30kWh가 남아 있습니다. 여기에 전비를 곱하면 남은 주행거리가 나옵니다.

일상에서는 20~80% 구간을 쓰라는 말을 자주 듣습니다. 배터리가 양 끝에서 더 큰 스트레스를 받기 때문인데, 절대 규칙은 아닙니다. 장거리를 가야 하면 100%까지 채우는 게 맞고, 요즘 차는 배터리 관리 시스템(BMS)이 보호를 상당 부분 알아서 처리합니다. LFP 계열 배터리는 오히려 주기적인 100% 충전을 권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결국 차량 매뉴얼의 안내가 일반론보다 앞섭니다.

SOH, 그릇이 얼마나 작아졌나

SOH(State of Health)는 배터리의 노화 정도를 새것 대비 %로 나타낸 값입니다. SOC와 자주 섞여 쓰이지만 가리키는 대상이 전혀 다릅니다.

구분 SOC SOH
의미 지금 얼마나 남았나 그릇이 얼마나 작아졌나
비유 물통에 담긴 물의 양 물통 자체의 크기
변화 충전·주행으로 수시로 오르내림 수년에 걸쳐 서서히 내려감
회복 충전하면 즉시 회복 원칙적으로 회복되지 않음
확인 계기판 잔량 % 진단기·전용 앱·서비스센터

SOH가 90%라면 출고 때 60kWh였던 배터리의 실사용 용량이 약 54kWh로 줄었다는 뜻입니다. 전비가 같다면 1회 충전 주행거리도 약 10% 짧아집니다.

중고 전기차를 살 때 SOH는 연식이나 주행거리만큼, 때로는 그보다 더 가격을 가릅니다. 다만 측정 방식과 조건에 따라 값이 흔들립니다. 같은 차를 다른 진단기로 재면 몇 %p 차이 나는 일이 드물지 않으니, 한 번 잰 값을 그대로 믿기보다 같은 방식으로 주기적으로 재서 추세를 보는 쪽이 의미가 있습니다.

열화는 왜, 얼마나 빨리 오나

열화는 사용과 시간 경과로 담을 수 있는 전기량이 줄어드는 현상이고, 그 정도를 숫자로 나타낸 게 앞의 SOH입니다. 원인은 두 갈래로 나뉩니다.

  • 사이클 열화: 충전과 방전을 되풀이하며 생기는 화학적 마모입니다. 주행거리가 쌓일수록 진행됩니다.
  • 달력 열화: 시간이 지나는 것만으로 생기는 노화입니다. 세워만 둬도 조금씩 진행되고, 높은 SOC로 고온에 오래 둘 때 빨라진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열화를 앞당기는 요인으로 자주 꼽히는 건 100% 완충 후 오래 방치하기, 습관처럼 급속충전에만 기대기, 극단적인 고온 환경입니다. 반대로 완속 위주로 충전하고 중간 SOC를 유지하는 쪽은 상대적으로 유리하다고 봅니다.

열화는 처음 몇 년에 비교적 빠르게 나타났다가 이후 완만해지는 경향이 보고됩니다. 출고 직후 몇 %가 빠졌다고 그 속도로 계속 줄어드는 건 아니라는 얘기입니다. 국내 판매 전기차 대부분은 배터리에 별도 장기 보증(주행거리·기간 기준)이 붙으니, 사기 전에 해당 차종의 보증 조건과 보증 기준이 되는 SOH 수치를 확인해 두세요.

그래도 열화 속도는 차종, 배터리 화학, 기후, 충전 습관에 따라 편차가 큽니다. 숫자 하나로 일반화하기 어려운 영역이라 구체적인 값이 필요하다면 그 차종 오너들의 실제 데이터를 찾아보는 게 정확합니다.

숫자를 한 줄로 이어 붙이면

가용 용량 60kWh, 전비 5.0km/kWh, SOH 92%인 차가 SOC 30%에서 80%까지 충전한다고 가정합니다.

  1. 실사용 용량 = 60kWh × 92% ≈ 55.2kWh
  2. 충전할 전력량 = 55.2kWh × (80% − 30%) ≈ 27.6kWh
  3. 충전 비용 = 27.6kWh × 단가 300원 ≈ 8,280원
  4. 충전으로 늘어난 거리 = 27.6kWh × 5.0km/kWh ≈ 138km
  5. 완충 시 주행거리 = 55.2kWh × 5.0km/kWh ≈ 276km

SOH를 빼고 계산했다면 완충 주행거리가 300km로 나왔을 겁니다. 24km나 차이가 나니 연식이 있는 차일수록 SOH를 넣어야 현실적인 값이 나옵니다. 반대로 출고 직후의 차라면 SOH를 100%로 두고 시작해도 결과가 거의 같습니다. 이 계산에서 가장 크게 흔들리는 값은 사실 전비라서, 계절이 바뀌면 SOH보다 전비를 먼저 다시 넣어 보는 게 좋습니다.

SOH 80%로 바꾸면 무엇이 달라지나

같은 차가 몇 년 더 지나 SOH가 80%로 내려갔다고 가정합니다. 가용 용량 60kWh, 전비 5.0km/kWh, 단가 300원, 충전 구간 30→80%는 그대로 둡니다.

항목 SOH 92% SOH 80%
실사용 용량 55.2kWh 60 × 80% = 48kWh
30→80% 충전 전력량 27.6kWh 48 × 50% = 24kWh
충전 비용 8,280원 24 × 300 = 7,200원
충전으로 늘어난 거리 138km 24 × 5.0 = 120km
완충 주행거리 276km 48 × 5.0 = 240km
7kW 완속으로 30→80% 27.6 ÷ 7 ≈ 3.9시간 24 ÷ 7 ≈ 3.4시간
1km당 충전비 8,280 ÷ 138 = 60원 7,200 ÷ 120 = 60원

한 번 충전 비용이 줄고 충전 시간도 짧아졌습니다. 언뜻 좋아 보이지만 그만큼 덜 담기는 것뿐이라, 한 번에 갈 수 있는 거리가 138km에서 120km로 18km 줄었습니다.

여기서 많이들 헷갈리는 게 마지막 줄입니다. 1km당 충전비는 두 경우 모두 60원으로 같습니다. 1km당 비용은 단가 ÷ 전비(300 ÷ 5.0)로 정해지고 SOH는 이 식에 들어가지 않습니다. SOH가 떨어지면 충전을 더 자주 해야 하는 불편이 생길 뿐, 같은 거리를 달리는 데 드는 전기요금이 올라가지는 않습니다. 월 충전비가 늘었다면 SOH보다 단가(급속 비중)나 전비(계절, 주행 패턴)를 먼저 의심하는 게 맞습니다.

불편이 얼마나 되는지는 충전 횟수로 보면 감이 옵니다. 30→80% 충전만으로 한 달에 600km를 달린다고 가정하면 SOH 92%일 때는 600 ÷ 138 ≈ 4.3회, 80%일 때는 600 ÷ 120 = 5회입니다. 한 달에 한 번 정도 더 꽂는 차이라, 집에서 완속으로 채우는 사람에게는 크지 않고 공용 충전기를 찾아다녀야 하는 사람에게는 꽤 큽니다.

계산할 때 흔히 생기는 실수

첫 번째는 잔량을 거리로 바꿀 때 출고 용량을 쓰는 실수입니다. SOC 50%를 보고 “60kWh의 절반이니 30kWh”라고 하면 SOH가 92%인 차에서는 실제 55.2kWh의 절반인 27.6kWh와 2.4kWh가 어긋납니다. 전비 5.0km/kWh로 치면 12km 차이라, 잔량이 아슬아슬할 때는 무시하기 어려운 거리입니다.

두 번째는 충전기 출력을 그대로 시간 계산에 쓰는 실수입니다. 100kW 급속이라도 “이론상” 1시간에 100kWh라는 뜻이지, 배터리가 그 속도를 끝까지 받아 준다는 뜻은 아닙니다. 충전 속도가 구간마다 달라지는 이유는 충전 원리 문서에 따로 정리했습니다.

세 번째는 카탈로그 용량을 가용 용량으로 착각하는 실수입니다. 앞에서 본 것처럼 하나만 적혀 있다면 총 용량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위 계산의 60kWh 자리에 총 용량을 넣었다면 결과 전체가 조금씩 부풀려집니다.

네 번째는 서로 다른 방식으로 잰 SOH를 나란히 놓고 열화 속도를 판단하는 실수입니다. 작년엔 서비스센터, 올해는 다른 진단기로 쟀다면 그 사이 몇 %p 차이는 측정 방식 탓일 수 있습니다. 추세를 보려면 같은 도구, 비슷한 SOC와 기온 조건에서 잰 값끼리 비교해야 합니다.

본인 차 조건으로 따라 해 보려면 배터리 수명(SOH) 계산기로 실사용 용량을 구하고, 주행거리 계산기와 충전요금 계산기로 넘어가면 위 흐름을 그대로 밟을 수 있습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매번 100%까지 충전하면 배터리가 정말 빨리 망가지나요?

망가진다기보다 열화가 조금 더 빨리 진행될 수 있다는 정도입니다. 문제가 되는 건 100%로 채운 뒤 고온에서 오래 세워 두는 경우이고, 채우고 바로 출발한다면 부담은 훨씬 작습니다. 장거리 출발 전 완충은 얼마든지 해도 됩니다.

Q. 겨울에 주행거리가 줄어드는 것도 열화인가요?

다른 현상입니다. 저온에서 거리가 줄어드는 건 일시적이라 기온이 오르면 돌아오고, 열화(SOH 저하)는 돌아오지 않습니다. 겨울에 계기판 거리가 짧게 뜬다고 배터리가 상한 건 아닙니다. 자세한 내용은 전비와 주행거리 문서에 있습니다.

Q. 급속충전만 쓰면 배터리에 나쁜가요?

급속은 완속보다 배터리에 열과 전기적 스트레스를 더 줍니다. 그래도 요즘 전기차의 배터리 관리 시스템은 온도와 출력을 능동적으로 제어해서, 가끔 쓰는 급속이 문제가 되는 경우는 드뭅니다. 신경 쓸 건 거의 급속에만 의존하는 패턴입니다. 관련 내용은 충전 원리 문서로 이어집니다.

참고 기준 · 본 문서의 계산 예시는 이해를 돕기 위한 가정값이며, 실제 배터리 거동은 차종·배터리 화학·기후·사용 습관에 따라 크게 달라집니다. 특정 차종의 용량·보증 조건·권장 충전 방식은 반드시 해당 제조사의 공식 매뉴얼과 보증 약관을 확인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