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비(km/kWh), 전기차의 연비
전비는 전기 1kWh로 몇 km를 가는지 나타내는 값입니다. 내연기관의 연비(km/L)와 같은 자리에 있고, 숫자가 클수록 효율이 좋습니다.
전비를 알면 두 가지가 바로 나옵니다.
- 필요 전력량 = 주행거리 ÷ 전비. 300km를 가려면 전비 5.0km/kWh 기준 약 60kWh가 필요합니다.
- 주행 비용 = (1 ÷ 전비) × 단가. 전비 5.0km/kWh에 단가 300원이면 1km당 약 60원입니다.
차급에 따라 전비 수준은 크게 다릅니다. 무거운 대형 SUV일수록 전비가 낮은데, 결함이 아니라 물리적으로 당연한 결과입니다. 기아 EV9은 공차중량이 트림에 따라 약 2,310~2,655kg에 이르는 대형 SUV로, 복합 전비가 3.6~4.2km/kWh 수준으로 인증돼 있습니다.[1] 소형·준중형 전기차가 5~6km/kWh대를 보이는 것과 견주면 차이가 뚜렷합니다.
인증 주행거리는 어떻게 정해지나
카탈로그의 “1회 충전 주행거리”는 제조사가 임의로 적는 값이 아니라 정해진 시험 절차를 거쳐 인증받은 값입니다. 국내에서는 산업통상자원부·환경부 기준의 복합 주행거리가 공식 표기값으로 쓰입니다. 도심 모드와 고속도로 모드를 각각 측정한 뒤 가중 평균해 냅니다.
해외 자료를 볼 땐 기준이 다르다는 걸 감안해야 합니다. 유럽 WLTP는 상대적으로 후하게 나오는 경향이 있고, 미국 EPA는 보수적인 편입니다. 같은 차인데 해외 리뷰의 주행거리가 국내 표기와 다르다면 대개 기준 차이입니다.
휠 크기도 큰 변수입니다. 같은 차, 같은 배터리라도 휠이 커지면 주행거리가 줄어듭니다. EV9 롱레인지 2WD·19인치가 501km인 데 비해 4WD 사양은 443~454km로 인증돼 있습니다.[1] 구동방식과 휠 사양만으로 47~58km가 벌어집니다. 카탈로그 대표값 하나만 보고 판단하면 안 되는 이유입니다.
저온 주행거리는 카탈로그에 이미 있다
의외로 잘 알려지지 않았는데, 국내 전기차 인증에는 상온 주행거리와 함께 저온 주행거리도 표기됩니다. 겨울에 얼마나 줄지 짐작할 필요 없이 공식 인증값을 보면 됩니다.
기아 EV9 롱레인지 2WD는 상온 501km, 저온 368km로 인증됐습니다. 감소율로 약 26.5%입니다.[2] EV9 GT는 상온 421km에 저온 359km로 인증된 기록이 있습니다.[3] 같은 EV9인데도 GT 쪽 감소율은 (421 − 359) ÷ 421 ≈ 14.7%로, 롱레인지 2WD의 절반 남짓입니다. 같은 이름의 차라도 트림마다 저온 값을 따로 봐야 하는 이유입니다.
캐나다자동차협회(CAA)가 영하 조건에서 조사한 전기차 평균 주행거리 감소율은 약 30% 수준으로 보고됐습니다.[2] 26.5%는 이 평균보다 조금 나은 편입니다.
차를 고르는 중이라면 상온 주행거리 옆에 저온 주행거리를 나란히 적어 두세요. 겨울 장거리가 잦다면 생활에 더 가까운 숫자는 저온 쪽입니다. 무공해차 통합누리집(ev.or.kr)이나 제조사 제원표에서 볼 수 있습니다.
저온에서 거리가 줄어드는 이유는 두 가지입니다. 리튬이온 배터리는 저온에서 내부 저항이 커져 꺼내 쓸 수 있는 에너지가 일시적으로 줄어듭니다. 그리고 난방이 있습니다. 내연기관차는 엔진 폐열로 실내를 데우지만 전기차는 히터에 배터리 전기를 바로 씁니다. 이 감소는 일시적이라 기온이 오르면 돌아옵니다. 영구적인 배터리 열화와는 다른 현상입니다.
히트펌프
히트펌프는 전기로 열을 직접 만드는 대신 바깥 공기나 부품에서 나온 열을 끌어와 실내로 옮기는 난방 장치입니다. 에어컨을 거꾸로 돌린다고 생각하면 쉽습니다. 같은 난방에 전기를 덜 쓰니 겨울 주행거리 손실이 줄어듭니다.
실측 자료로도 효과가 보입니다. 한 조사에서 히트펌프를 단 차량의 겨울 주행거리 유지율은 평균 83~89%였고, 없는 차량은 63~75%에 머물렀습니다.[4] 차종별로는 테슬라 모델X 89%, 아이오닉5 85%, 폭스바겐 ID.4 63% 등의 수치가 보고됐습니다.
히트펌프도 만능은 아닙니다. 바깥 기온이 아주 낮으면 끌어올 열 자체가 부족해 효율이 떨어지고, 이때는 보조 전기 히터가 같이 돕니다. 영하 20도 같은 극한에서는 이점이 줄어듭니다.
회생제동
회생제동은 감속할 때 모터를 발전기처럼 돌려 운동 에너지를 전기로 되돌리는 기능입니다. 내연기관차에서 브레이크 마찰열로 날아가던 에너지를 배터리로 다시 넣습니다.
효과는 어디를 달리느냐에 따라 크게 갈립니다.
- 도심: 가감속이 잦아 회수할 기회가 많습니다. 전기차가 도심에서 오히려 전비가 잘 나오는 주된 이유입니다.
- 고속도로: 일정 속도로 달리니 감속이 적고 회수량도 적습니다. 여기에 고속에서는 공기저항이 급격히 커져 전비가 더 나빠집니다.
- 내리막: 회수량이 가장 큽니다. 긴 내리막에서는 잔량이 오히려 늘기도 합니다.
내연기관차는 보통 고속도로 연비가 도심보다 좋은데 전기차는 반대인 경우가 많습니다. 이 역전의 상당 부분이 회생제동에서 나옵니다.
덤도 있습니다. 감속을 회생제동이 맡는 만큼 마찰 브레이크를 덜 써서 패드 수명이 길어지고, 전기차 정비비가 적게 드는 이유 중 하나가 됩니다. 다만 브레이크를 거의 안 쓰면 디스크에 녹이 슬 수 있어 가끔은 일반 제동을 섞어 주는 게 좋습니다.
대부분의 전기차는 회생제동 강도를 여러 단계로 조절할 수 있고, 가속 페달만으로 감속과 정차까지 하는 원 페달 드라이빙을 지원하기도 합니다.
실주행 전비를 흔드는 것들
인증값과 실주행이 벌어지는 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영향이 큰 것부터 적으면 다음과 같습니다.
| 요인 | 영향 | 설명 |
|---|---|---|
| 기온 | 매우 큼 | 저온에서 20~30% 감소가 인증값에도 반영될 정도 |
| 주행 속도 | 큼 | 공기저항은 속도의 제곱에 비례. 고속도로 정속이 특히 불리 |
| 운전 습관 | 큼 | 급가속·급제동이 잦을수록 손해 |
| 탑승 인원·짐 | 중간 | 무게가 늘면 가속에 더 많은 에너지 필요 |
| 휠·타이어 | 중간 | 큰 휠, 광폭 타이어일수록 불리 |
| 공조 사용 | 중간 | 난방이 냉방보다 전력 소모가 큼 |
| 지형 | 상황별 | 오르막은 손해, 내리막은 회수로 상쇄 |
그래서 같은 차라도 실사용 전비의 폭이 꽤 넓습니다. 앞의 EV9만 해도 악조건에서 약 3.6km/kWh 수준이 기록된 자료가 있는 반면[5] 조건이 좋은 혼합 주행에서는 인증값을 크게 웃도는 시승 기록도 있습니다.[6] 숫자 하나로 단정하기보다 범위로 받아들이는 게 현실적입니다.
전비 차이를 돈과 거리로 바꿔 보면
전비 1km/kWh 차이가 실제로 얼마인지는 계산해 봐야 실감이 납니다. 단가는 위 예시의 300원을 그대로 쓰고, 월 주행거리는 1,000km로 가정했습니다.
| 전비 | 1km당 비용 (300 ÷ 전비) | 월 1,000km 전력량 | 월 충전비 |
|---|---|---|---|
| 6.0km/kWh (소형·준중형 상단) | 50원 | 약 167kWh | 약 5만원 |
| 5.0km/kWh | 60원 | 200kWh | 6만원 |
| 4.2km/kWh (EV9 인증 상단) | 약 71원 | 약 238kWh | 약 7만 1천원 |
| 3.6km/kWh (EV9 인증 하단·악조건 실측) | 약 83원 | 약 278kWh | 약 8만 3천원 |
표 위아래 끝을 비교하면 같은 1,000km에 월 3만 3천원 정도 차이가 납니다. 1년이면 40만원 가까이 됩니다. 차급이 다른 두 차를 놓고 충전비만 비교하면 이런 차이가 나오는데, 앞에서 말했듯 이건 효율이 나빠서라기보다 차가 크고 무거워서 생기는 몫입니다.
거리 쪽도 같은 식으로 볼 수 있습니다. EV9 롱레인지 2WD의 감소율 26.5%를 4WD 사양 443km에 그대로 적용해 보면 443 × (1 − 0.265) ≈ 326km입니다. 4WD의 실제 저온 인증값은 이 글에서 확인하지 못했으니 어디까지나 어림값이지만, 상온 기준 47~58km였던 휠·구동 차이가 겨울에는 대략 35~43km 정도로 비례해 줄어든다는 감은 잡힙니다. 실제 값은 제원표의 저온 주행거리로 꼭 확인하세요.
히트펌프 조사의 유지율을 같은 방식으로 상온 501km에 곱해 보면 차이가 더 크게 보입니다. 유지율 83~89%면 약 416~446km, 63~75%면 약 316~376km입니다. 두 범위 사이가 최소 40km, 넓게는 130km까지 벌어집니다. 조사 대상 차종이 EV9이 아니고 측정 조건도 다르니 이 숫자를 EV9의 겨울 거리로 읽으면 안 됩니다. 다만 “히트펌프 하나가 휠 크기보다 겨울 거리에 더 크게 작용할 수 있다”는 정도의 감은 여기서 얻을 수 있고, 트림을 고를 때 휠보다 히트펌프 유무를 먼저 확인하라는 말도 같은 맥락입니다.
내 차 전비를 직접 재는 법
계기판이나 차량 앱의 평균 전비가 가장 손쉬운 숫자입니다. 다만 리셋 시점에 따라 의미가 달라집니다. 겨울 내내 리셋하지 않은 값과 지난주에 리셋한 값은 비교 대상이 아니니, 비교하려면 같은 기간 단위(예: 한 달)로 끊어 기록하세요. 여름 한 달과 겨울 한 달 값을 나란히 적어 두면, 위 표에서 내 차가 어느 줄에서 어느 줄로 옮겨 가는지가 그대로 보입니다.
좀 더 지갑에 가까운 숫자를 원하면 충전 기록을 씁니다. 한 달 동안 충전기에 찍힌 kWh를 모두 더하고, 같은 기간 주행거리를 그 값으로 나누면 됩니다. 이렇게 구한 전비는 계기판 전비보다 조금 낮게 나오는 게 정상입니다. 충전 과정의 변환 손실이 계량값에 섞여 있기 때문이고, 요금은 이 숫자를 기준으로 나가니 비용 계산에는 이쪽을 쓰는 게 맞습니다.
해외 자료를 볼 때는 단위부터 맞추세요. 유럽 자료는 전비를 kWh/100km로 적는 경우가 많고, 숫자가 작을수록 효율이 좋아 방향이 반대입니다. 100을 그 값으로 나누면 km/kWh가 됩니다. 출처 [5]의 27.9kWh/100km는 100 ÷ 27.9 ≈ 3.6km/kWh로, 본문의 악조건 수치와 같은 값입니다. 이 변환을 빼먹고 숫자를 그대로 비교하는 실수가 의외로 흔합니다.
구한 전비는 전비 변환 계산기에 넣어 1km당 비용으로 바꾸고, 주행거리 계산기로 지금 잔량으로 갈 수 있는 거리를 확인해 보세요. 겨울 전비가 왜 떨어지는지 더 자세한 계산은 겨울철 주행거리 관리에 있습니다.
덧붙이는 질문
Q. 계기판에 뜨는 주행 가능 거리는 정확한가요?
계기판 값은 대개 최근 주행 전비로 계산한 추정치입니다. 그래서 직전에 고속도로를 달렸는지 도심을 달렸는지에 따라 같은 잔량에서도 다른 숫자가 뜹니다. 겨울에 시동 직후 유난히 짧게 뜨는 것도 이 때문이고, 달리면서 조건이 반영되면 값이 조정됩니다.
Q. 큰 휠로 바꾸면 얼마나 손해인가요?
정확한 수치는 차종과 타이어에 따라 다릅니다. 다만 제조사가 같은 차를 휠 사양별로 따로 인증한다는 것 자체가 영향이 작지 않다는 뜻입니다. 순정보다 큰 휠로 바꾸면 인증값보다 짧아질 가능성이 높습니다.
- 기아 EV9 공식 제원 — kia.com
- 겨울철 전기차 주행거리 인증값 비교(EV9 상온 501km / 저온 368km, CAA 조사 인용) — 오토트리뷴
- EV9 GT 인증 제원(상온 421km / 저온 359km) — 탑라이더
- 히트펌프 탑재 여부별 겨울철 주행거리 유지율 — 카가이
- 아우토빌트 악조건 실측(약 27.9kWh/100km) — 이코노믹데일리
- EV9 시승기 — 모터그래프
인증 수치는 트림·휠 사양·측정 시점에 따라 달라질 수 있으며, 구매 전 반드시 해당 차종의 최신 공식 제원표를 확인하세요. 전비별 충전비 표의 월 주행거리(1,000km)와 4WD 저온 주행거리 어림값은 설명을 위한 가정입니다.